시민공감 기자단 기사
시민기자단_이세영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는 각각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물리적인 쇠퇴와 생활환경의 질적 저하 등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활력을 일으키고자 하는데, 그것이 바로 도시재생이다.
도시재생은 물리·환경적 측면, 산업·경제적 측면, 사회적 측면, 역사·문화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특징을 구분할 수 있다.
그 중 역사·문화적 측면의 도시재생은 도시의 문화적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도시의 환경 요소 중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재생하여, 도시환경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도시 경관의 정체성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또한 지역의 생활문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역성과 장소성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도시는 각각의 역사적 사실과 유물, 자료 등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 지역의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은 도시재생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자산이다.
멀지 않은 나라 홍콩은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여, 박츠레인(Pak Tsz Lane), 프린스 에드워드 로드 웨스트(Prince Edward Road West), 멜로이 스트리트(Mallory Street), 유록레인(Yu Lok Lane) 등의 사업을 진행시켜 주목받고 있다. 홍콩은 역사·문화자원을 국가적인 문화재로 보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접근하여 도시재생을 추진하였다.
강화군은 1970~80년대 방직산업으로 성장했으나 산업구조의 변화와 시설의 이전 등을 통해 지역 쇠퇴가 일어났다. 그러나 고려궁지, 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통해 원도심 지역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도시재생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
대전은 철도역사를 통해 다양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소제동의 옛 관사촌으로 쓰이던 건물이나 장소 자체가 도시재생의 요소가 되거나, 그곳에서 거주했던 주민들의 역사를 책으로 엮은 것처럼 이야기가 도시재생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우리의 역사이자 현재 대전의 모습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역사·문화적인 인물에는 누가 있으며, 도시재생의 방향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대전의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이다. 1880년 12월 8일에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인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리미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에서 8살 때까지 살았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단재 홍보관
신채호 선생 생가지는 1991년 7월 10일에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 7월 10일에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1992년 여름 생가터에 대한 발굴조사와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하여 신채호 선생의 생가가 복원되었다.
신채호 선생의 생가와 홍보관을 방문하면 이호승, 송도순, 유복영 선생 등 대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름이 나열된 전시물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며, 이곳을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데, 그 방안이 도시재생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탄탄한 문헌 연구가 기반이 되어야 하며, 지역주민과 관광객, 전문가의 의견이 수렴되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재보호법 등의 이유로 제한 받거나 개인의 소유권으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부분을 극복하는 문제도 당면할 수 있다.
하지만 대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다양한 시각과 이야기로 연결하여, 대전 전체를 아우르는 역사·문화 도시재생의 큰 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