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감 기자단 기사

문학을 사랑하는 대전시민들을 위한 공간, 대전문학관을 아시나요?

시민기자단_고혜정

대전시민 만 18년 차. 하지만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102번 버스를 탔습니다. 초행길이라 맞게 가고 있는지 노선도를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용전초등학교 앞에서 내렸습니다. 이제 인터넷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4차선 도로를 건너 맞은편 골목길로 향했습니다. 머리 위에 전깃줄이 어지럽게 엉켜있는 골목길에는 정겨운 간판들이 이어집니다.

대전문학관입구 정류장

골목길을 지나고부터는 지도와 눈앞의 풍경이 맞지 않습니다. 드디어 길치 본능이 발현된 것이지요. 여기인지 저기인지 왔다 갔다 서성이길 10여 분. 걸음을 멈추자 대로변 버스정류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전문학관’, 버스정류장 이름을 보고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제대로 오긴 했나 봅니다.
다시 8차선 도로를 건너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송촌남로11번길이라는 파란색 표지판이 맞아줍니다. 여기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3분쯤 걸었을 때 드디어 대전문학관을 찾았습니다.

대전문학관 입구

대전문학관은 2012년 12월 27일 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대전 문학사와 지역 문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기획전시’, 지역 문화유산 보존과 공유를 위한 ‘대전 문인 아카이빙’, 시민의 문학적 소양 및 감수성을 개발하는 ‘문학교육 프로그램’, 작가와 함께하는 ‘문학 콘서트’ 등을 이어오고 있다는데요. 버스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이곳에 개관 10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아직은 코로나 상황이라 1층 출입구는 닫혀있어 계단을 따라 2층 출입구를 이용해야 했는데요. 2층으로 향하는 꽃길이 예뻐서 잠시 둘러봤습니다. 대전문학관은 도심이지만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어 고즈넉한데요. 건물 뒤로 1.5km나 되는 숲길이 이어져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길이기도 합니다.

이재복 <꽃밭>

‘야외문학관’이라는 번듯한 이름도 있는 야외마당에는 커다란 시비(詩碑)가 있습니다. ‘꽃밭’이라는 제목과 노란 꽃, 하얀 꽃이라는 시작 단어에 예쁜 동시인 줄 알았는데요. 이재복 시인은 이웃이 함께 심고 가꾸는 꽃밭에서 분단의 아픔을 발견해 내셨더군요.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

봄이 무르익는 지금과 딱 맞는 시구를 음미하며 다시 건물로 향했습니다. 한국문학관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이라는 기념 판이 관람객을 반겨줍니다.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했던 대전문학관의 여러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새삼 아쉬웠습니다. 예전에 ‘토지’로 유명한 원주 박경리 문학관에 아이들과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대문호가 없는 대전이기에 이곳에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상설전시실을 거닐며 박팽년, 신흠, 송시열, 김만중 국사 시간에 배웠던 인물들이 대전 문학의 토대를 만들었고 그 기운이 근현대 대전 문학을 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박용래 시인의 ‘오류동의 동전’을 읽고 시인의 곡절 많은 삶을 더듬으며 한참 서 있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종합 문예지 <호서문학>을 통해 우리 대전이 문학적 전통을 가진 도시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대전문학관 내부

계단을 따라 1층 기획전시실로 향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7월까지 <1960년대 대전문학전, 푸른 봄이 오기까지를>이 절찬 진행 중입니다. 1960년대는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을 시작으로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사와 한국 문학사 그리고 대전 문학사를 함께 소개하며 당대 대전 문단의 시대 비판적 문학 활동과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특히 <분향>이라는 문예지는 4·19 혁명에서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유일한 추모시집이었다는데요.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문학을 사랑했던 당시 대전 학생들의 정신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남상광 <사람이>

문득 내가 사는 대전의 색다른 모습이 궁금하다면 버스를 타고 대전문학관에 들러보세요. 대전하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관광 명소와 맛집이 없다고 자칭 타칭 ‘노잼도시’라고 합니다만, 문학이라는 우리 고장만의 멋진 기풍을 음미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