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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위에 현대를 얹다 : 대전시립박물관의 건축과 시간
DJRC   2025-07-08 16:39:25   19



전통 위에 현대를 얹다 : 대전시립박물관의 건축과 시간 


도시재생 서포터즈 대전도시남자들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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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품은 콘크리트 - 대전시립박물관에서 건축을 읽다


 대전 유성구 갑천변에 자리한 대전시립박물관은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도시의 고층 아파트 숲 사이에서 이 박물관은 스스로를 은유하는 듯한 실루엣을 드러낸다. 부드럽게 흐르는 갑천을 마주 보며, 건물은 경사진 매스를 통해 낮고 길게 뻗어나간다. 박물관의 매스가 형성하는 비스듬한 선과 수평적 확장은 단순히 독특한 형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지가 가진 방향과 주변 경관에 화답하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이 건물은 겉으로 드러내는 장식이 많지 않다. 복잡한 무늬나 기둥, 전통 기와 대신, 단단한 콘크리트와 넓은 유리면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대비가 전체의 표정을 결정한다. 매스를 비스듬히 기울인 형태는 박물관의 핵심 디자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능적이라기보다는 조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방향성을 지닌다. 특히 밤이 되어 외곽 라인을 따라 조명이 은은히 켜지면, 묵직한 콘크리트와 투명한 유리가 어울려 단순한 ‘기억 저장소’를 넘어선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까이 다가가면 건물의 일부 벽면이 유리 커튼월로 마감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덕분에 내부와 외부가 시각적으로 연결되고, 박물관이라는 폐쇄적 공간이 보다 열린 문화 공간으로 해석된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전시홀의 불빛이 스며 나와, 밖에서도 이곳이 살아 있는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설계는 대전시립박물관이 지역 주민과 도시를 향해 열려 있음을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이 건축물은 전통적인 이미지보다는 현대적 조형미와 간결한 물성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이 품은 ‘기억’은 오히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단순하고 견고한 구조물에 오랜 이야기를 담아두는 방식이 오히려 공간의 상징성을 더욱 강화한다.



“대전의 문화유산을 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현재 진행 중인 상설 전시, 「대전의 문화유산을 품다」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는 대전의 지역성과 역사적 정체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대전은 행정 도시이자 교통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이 땅 위에는 훨씬 오래된 시간의 켜가 쌓여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백제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 고려시대 불상 파편, 조선시대의 고문서 등 다양한 유물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지역의 일상과 문화, 믿음을 보여주는 작은 단서이자, 대전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진 토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시는 단순히 유물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곳곳에 설치된 영상과 모형, 체험형 전시가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유물을 통해 과거를 배우는 동시에, 그 유물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관람하며 대전의 뿌리를 알아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울 수 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유물들은 오래전 사람들의 숨결과 손길을 상상하게 만든다. 어떤 것은 이 지역에 오랫동안 이어진 생활 방식의 증거이고, 어떤 것은 한 시대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전시를 찬찬히 보다 보면, 지금 이 도시의 모습이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수많은 사람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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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


 대전시립박물관은 겉보기엔 규모가 웅장하지만, 그 분위기는 의외로 따뜻하고 차분하다. 입장료가 무료라서 가볍게 산책하듯 들르기에도 좋다. 관람 동선은 넓고 편안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려운 해설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 문구와 설명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박물관 옆으로는 갑천과 이어지는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 봄에는 산책로를 따라 꽃이 피고, 여름에는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박물관 관람과 함께 산책까지 즐길 수 있다. 가끔은 전시 관람을 마치고 천천히 강변을 거닐다 보면,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진 독특한 여운이 남는다.


 또한 이곳은 계절별로 다양한 문화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 지역의 역사를 주제로 한 강연, 특별 기획전 등이 연중 이어져,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지역 문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대전시립박물관은 화려한 고전 양식을 드러내거나 전통을 직접적으로 모방하지 않는다. 대신 현대적 건축의 물성과 조형성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담아내고,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외관에서 읽히는 강한 선과 매스, 내부에서 만나는 전시의 서사성은 박물관이 단순히 과거의 물건을 모아둔 곳이 아니라, 도시와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기억의 장소’임을 증명한다.


 도시는 늘 변한다. 건물은 변하고, 새로운 아파트와 도로가 생긴다. 그러나 그런 변화의 중심에도, 대전시립박물관 같은 건축물은 묵묵히 서서 도시의 시간을 담아낸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언젠가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 누군가의 기억에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박물관은 그래서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선다. 거대한 책장처럼, 한 도시가 지나온 이야기를 조용히 그리고 단단히 보관하는 장소. 그 안에서 우리는 과거를 읽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대전시립박물관, 그 이름처럼 도심 속에서 시간을 품고 있는 건축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