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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 대전 원도심 문화유산 탐방기
DJRC   2025-07-08 17:24:17   28

대전시의 원도심 내 문화유산투어(테미오래, 헤레디움, 대전창작센터)


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 대전 원도심 문화유산 탐방기


도시재생 서포터즈 도시락팀 여예진


 무더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계절, 대전 원도심의 골목길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까지 대전의 중심이었던 원도심은 한때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스며든 문화예술의 힘이 이곳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100년 전 관사촌의 기와지붕 아래서, 오래된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그리고 근대 건축물의 붉은 벽돌 틈새에서 창작자들의 열정이 꿈틀거린다. 대전역에서 시작해 원도심 깊숙이 들어가는 이 여정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대전만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헤레디움의 근대적 풍경에서 시작해, 테미오래의 일상 속 문화를 거쳐, 대전창작센터의 예술적 에너지까지 - 세 공간이 들려주는 원도심 재생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헤레디움 전경]


 대전역 광장을 나서 대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벽돌로 단정하게 지어진 근대 건축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헤레디움이다. 건물의 정면을 마주하고 서면, 1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으로 건립된 이 건물은 우리나라 경제 수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현재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헤레디움(HEREDIUM)'이라는 이름 자체가 라틴어로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의 아픔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문화의 힘으로 승화시킨 공간이다.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건물은 이제 대전 원도심 문화 재생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헤레디움 입구]


 헤레디움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기 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새빨간 입술과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헤라클레스 모델32’라는 조각이다. 화려한 색감이 주는 경쾌함과 달리, 거칠고 울퉁불퉁한 몸의 표면은 헤라클레스가 겪어야 했던 시련과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헤레디움 시리즈 <디토와 비토>는 2025년 8월 17일까지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헤레디움에서는 2025년 상반기 현대미술 특별전 '디토와 비토(Ditto and Veto)'가 진행되고 있다. 총 19명의 작가가 참여해 27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무라카미 다카시, 앤디 워홀, 장-미셸 오토니엘, 줄리안 오피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역사의 무게와 현대 예술의 감각이 어우러진 이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헤레디움 미술관 내부 전경]


 배경음악 하나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는 오직 작품들만이 관람객과 대화를 나눈다. 작품 간의 거리가 가깝게 배치되어 있어, 마치 작가들이 서로 속삭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친밀한 공간 구성 덕분에 작품 하나하나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헤레디움이라는 역사적 공간이 품고 있는 무게감과 현대 미술이 만나서 더욱 특별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꿈돌이가 테미오래에 온 관광객들을 환영하고 있다.]

 

 헤레디움에서 나와 원도심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마을 하나가 나타난다. 테미오래, 이곳은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긴 후 지어진 충남도지사 관사촌이었던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관사촌이라는 특별함을 간직한 채, 이제는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2018년 공모를 통해 '테미오래'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테미'와 '오래'라는 두 단어가 만나 '대전에서 오래도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테미오래 1호 관사의 전경]


[<테미체험관:공간의 共感(공감)> 전시 일부]


 테미오래 1호 관사에서는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전시가 아니라, 시각, 촉각, 청각, 후각의 감각을 통해 몸 전체로 국가등록문화유산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평소 박물관에서는 '만지지 마세요'라는 표지판만 보던 터라, 이렇게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전시 방식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동시에 문화유산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소통하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테미오래 5호 관사 전경]


[<테미메모리> 전시 일부]


 <테미메모리>라는 특별한 공간이 펼쳐진 테미오래 5호 관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입구에서부터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둘러본 실내는 마치 개인 박물관을 방문한 듯했다. 평소 박물관에서나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었던 근대 소품과 가구들이 이곳에서는 생생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 공간은 2024년 지역업체 명화사진관과의 협업을 통해 더욱 풍성해졌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오래된 카메라였다.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와는 전혀 다른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그 카메라는, 90년 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어 했을지 상상하게 했다. 



[대전창작센터 전경]


 테미오래를 뒤로 하고 대전창작센터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대전창작센터는 원래 1983년에 지어진 대전 중앙도서관이었다. 30여 년간 시민들의 지식 갈증을 해소해 주던 이 건물이 2017년 예술창작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도서관에서 창작센터로의 변신, 이것 자체가 대전 원도심 문화유산 재생의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 도서관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 구조는 책을 읽던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식을 담았던 서가 자리에 이제는 예술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양새봄 작가님의 전시]


[전지홍 작가님의 전시]


 현재 이곳에서는 'DMA 캠프 2025 Ⅱ_숫돌일지'라도 아침을 고할지니'라는 전시가 5월 27일부터 8월 2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회화, 설치, 영상, 도자, 사진 등 27점의 작품을 '숫돌일지라도 아침을 고할지니'라는 시적인 제목처럼, 각 작품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젊은 기획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예술을 무료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의미가 깊었고 책으로 지식을 전하던 공간이 이제는 예술로 감동을 전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용도 변경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적 필요에 맞춰 공공 건축물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임을 실감 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