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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시재생 서포터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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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테미오래
관리자   2024-07-03 20:35:51   111

초여름의 테미오래

 

도시재생 서포터즈 오아시스 유시연

 

쉬는 날인데, 뭐 재밌는 거 없나?’

대전 토박이인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럴 때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어진다. 누군가대전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갈 만한 곳은 다 가봐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전 사람들은 공감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지난 현충일은 반가운 휴일이었지만, 늘 가던 동네와 항상 즐기던 휴일 루틴을 하기엔 지겨워진 무렵이었다. 색다른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그때, 옛 충청도지사 관사촌이자 현재는 테미오래라고 불리는 곳을 한 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대전에 이런 곳이 있었어?”

50년을 넘게 대전에 살아온 엄마는 딸 덕분에 대전에 이런 곳이 있는 걸 처음 알았다며 신기해했다. 테미오래 초입엔 장소 명칭에 대한 설명과 어떻게 그곳을 둘러보면 좋은지에 대한 지도 겸 순서도가 나타나 있었다. 설명을 읽기 전까지 테미오래라는 명칭이 굉장히 세련됐다고 느꼈기에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 자세히 읽어보았다. 이는 지역의 옛 명칭인 테미로 오라는 의미와 테미와 관사촌의 오랜 역사라는 중첩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 건물인 충청도지사 공관 입구를 들어가자 스템프 투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옛날 결재서류를 여권처럼 만들어서 스탬프를 찍으며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재미를 더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도지사가 손님을 접대하던 응접실과 서재 등이 재연되어 있다.

 

 

서재에서 정원이 보이는 쪽으로 가면 길게 베란다 형식의 긴 복도가 나온다.

나무 창살 사이로 환하게 들어오는 자연광과 정원의 푸르름이 초여름임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여기 앉아 차 한 잔 하면 참 좋겠다.”

엄마는 그 공간을 온전히 느끼듯이 나른하게 말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직후인 1946년까지 고위공직자의 관사로 사용되던 건물들이기에 일본식 가옥의 잔재로 한옥보다는 일본 단독주택의 느낌이 물씬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거실과 같은 집 한가운데 중간에 크고 넓은 공간을 중심으로 방과 다른 공간들이 펼쳐지는 한옥과는 달랐다. 일본식 단독주택의 형태처럼 가로로 긴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이 있고, 문 뒤에 공간들이 미로처럼 연결된 형태였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손님을 접대하는 넓은 공간이 나온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본 적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공관을 둘러보고 나오며 긴 복도 창가 밖의 정원에 가보았다. 엄마와 벤치에 잠깐 앉아 푸르름이 가득한 정원을 감상하다가 옆으로 난 돌계단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혼자 일어나 오솔길처럼 난 돌계단을 따라가니 그곳이 1호 관사와 이어지는 길임을 알게 됐다.

 

 

어린이들이 테미오래를 좀 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된 1호 관사.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오감으로 테미오래를 느껴볼 수 있는 상시 오감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또다시 오솔길을 따라 제2 관사로 간다. 2호 관사는 테미놀이터라는 주제로 꾸며놓았다. 흑백 즉석사진기를 통해 추억을 남겨볼 수도 있고, 추억의 오락기로 연인들끼리 내기를 해볼 수도 있다. 아니면 아기사방 같은 고전적인 놀이를 할 수도 있다. 나는 주사위 던지기로 올해 나의 운세를 재미 삼아 점쳐보며 약간의 미래 계획에 대한 조언을 얻기도 했다.

 

 

  

5호 관사는 테미메모리로 카메라와 통신기기 또는 엔틱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6호 관사는 여러 작가의 전시공간으로 쓰였다.

 

 

관사마다 마련되어 있는 스탬프 투어를 성실히 마치고 나면, 마지막 7호 관사에서 스탬프 투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어떤 기념품인지 모르지만, 약간의 기대감이 모든 관사를 성실히 관람하게 만든다. 기념품으로 받은 귀여운 메모지는 테미오래의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해준 소소한 행복이 된다.


 

7호 관사에서는 무료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2층까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으니 꼭 한번 올라가 보시길 추천한다.

 

 

테미오래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입장료는 무료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니 참고하자. 거리도 관사도 깔끔히 정비되어 있고, 안전한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역사적 공간이니만큼 신청하면 문화관광 해설도 들을 수 있다. 안내문을 읽고 자유롭게 관람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설명을 들으며 관람한다면, 테미오래와 대전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이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최근에 데이트할 곳이 없다는 친한 커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한적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꼈던 이곳을 한번 가보라고 추천했다. 아직도 대전시민들에게조차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명소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유명해지는 게 아쉬우려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면 더 다채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초여름에 방문한 테미오래는 이제 싱그러움이 시작된 곳이었다.

변화가 많지 않은 평화로운 대전에서 계절마다 기다려지는 풍경이 있는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오늘 어땠어? 딸이 새로운 곳 데려왔지?”

. 대전 살면서 처음 왔는데, 너무 좋다. 계절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와도 좋을 것 같아. 가을에 단풍 들면 멋있을 것 같고, 겨울에 눈 내리면 또 다른 풍경일 것 같은데.”

그래, 여기 봄에 벚꽃 필 때 와도 엄청 예쁘대. 다음에 또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