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균형발전과 시민의 행복을 꿈꾸는 대전도시재생지원센터
타슈를 타고 떠나는 나들이– 도시 속 쉼표, 대전을 달리다
도시재생 서포터즈 대전도시남자들 권태현
“빠르게 가고 싶다면 차를 타고, 도시를 느끼고 싶다면 타슈를 타세요.”
대전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본 적 있을 노란 자전거, ‘타슈’. 공공자전거라는 정체성은 물론이고, 도시재생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일상 속 가벼운 발걸음이 되어주는 존재다. 바쁜 하루, 익숙한 골목길을 지나며 문득 느꼈다. ‘오늘은 타슈를 타고 내가 사는 도시를 천천히 둘러보면 어떨까?’
그렇게 나는 타슈 하나로 떠나는 대전 나들이를 시작했다. 오직 도시의 결을 느끼기 위한 길 위의 여행. 오늘의 코스는 유성구 유림문화공원부터 시작해 엑스포시민광장을 지나, 엑스포다리를 건너 한빛탑까지. 오늘 하루 대전이라는 도시는 자전거 위에서 나에게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첫 정거장, 유림문화공원– 문학의 숨결과 자연의 조화
유성구 봉명동. 대전의 북서쪽 중심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이 동네는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풍경을 품고 있다. 갑천대교 옆으로 펼쳐진 넓은 공원, 유림문화공원에 도착하면 바람결이 먼저 반긴다. 공원 중심에는 아담한‘문학마을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 문학마을 도서관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가면, 작지만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이 도서관은 단순하지 않다. 지역 주민들의 글쓰기 모임, 저자 강연, 그리고 문학을 매개로 한 소소한 문화행사들이 열린다. 책장 사이를 걷다 보면 누군가의 시 한 줄이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도서관을 나와 공원 둘레길을 따라 타슈를 타고 천천히 돈다. 나무 아래를 지날 때마다 햇살이 부서지듯 떨어지고, 길가에 심어진 꽃과 잔디의 향이 짙어진다.
길은 이어져 공원 뒤편‘속리산 소나무 숲’으로 향한다. 이름처럼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이 숲은, 짧은 자전거 산책 코스로 적당하다. 도심 한복판에서 숲의 냄새를 맡는 기분이란 참 묘하다. 타슈의 바퀴는 어느새 느려지고, 나는 이 속도를 즐기기 시작한다.
# 속리산 소나무 숲
그리고 길 끝에서 만나는 작은 연못, ‘반도지’. 이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쉼터이다. 연못 주변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앉아 있으면 오리 한두 마리가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지나간다. 도심 속에서 이런 정적을 만날 줄이야. 반도지는 마치 잠시 멈추어 가라는 도시의 위로처럼 다가온다.
두 번째 정거장, 엑스포시민광장 - 도심의 품으로
다시 페달을 밟는다. 유성의 조용함을 뒤로하고, 이제는 도심의 생기를 향해 나아간다. 도로 옆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엑스포시민광장에 도착하게 된다. 대전엑스포가 열렸던 1993년의 흔적은 이제 시민들의 생활 속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은 광장이라기보다는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도시의 마당 같다.
광장에는 주말이면 플리마켓이 열리고, 평일 낮에는 유모차를 밀고 산책하는 가족들, 조깅하는 사람들, 그리고 혼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타슈를 타고 광장을 천천히 돌면, 속도가 느려질수록 풍경이 더 선명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광장의 진짜 매력은, 시야가 열리는 공간 구조에 있다. 대전의 도시 구조는 비교적 압축적이지만, 엑스포시민광장만큼은 탁 트인 개방감을 준다. 어디선가 들리는 버스킹 음악, 강바람에 흩날리는 종이컵 하나, 그림자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는 노부부의 모습. 이 모두가 도시의 따뜻한 단면이다. 타슈를 타고 이곳을 스치면, 나는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는 소속감을 느낀다.
세 번째 정거장, 엑스포다리– 도시를 잇는 선 위에서
광장 끝에서부터는 엑스포다리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이 다리는 단순한 보행자용 다리가 아니다.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자, 도심과 도심을 연결하는 감각적인 통로다. 다리 위에 서면 갑천이 천천히 흐르고, 앞쪽으로는 한빛탑의 실루엣이 보인다. 다리 바닥은 특유의 결을 가지고 있어서, 바퀴가 닿을 때마다‘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그 감각이 꽤 좋다.
엑스포다리를 건너며 도시를 바라보면, 이곳이 얼마나 다층적인 공간인지 깨닫게 된다.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위로는 사람들이 걷는다. 타슈는 그사이를 달린다. 다리 중간쯤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 아까 지나온 광장이, 봉명동의 나무들이, 내 뒤로 이어지는 실선처럼 느껴진다. 도시를 잇는 건 결국 사람이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건 이런 작은 기반 시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정거장, 한빛탑– 도시와 마주한 나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장소, 한빛탑. 1993년 대전 엑스포의 상징이자, 지금은 도시의 밤을 밝히는 조형물이다. 낮에 보면 그 웅장함이 인상적이지만, 해 질 무렵부터 조명이 켜지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탑 아래 넓은 공간에 앉아본다. 분수 소리와 사람들 웃음소리, 그리고 머리 위로 펼쳐진 탑의 조명. 이 모든 것이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짓는 배경 음악 같다.
도시는 늘 바쁘게 흘러간다. 하지만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이렇게 다양한 얼굴들을 보여준다. 오늘 타슈를 타고 달린 길은 평소에도 존재했던 길이다. 하지만 내가 그 위에서 천천히 호흡하며 바라본 풍경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왔다.
대전은 빠르게 지나쳐야 할 도시가 아니다. 천천히 달릴 때 더 많은 걸 들려주는, 그런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