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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의 숨결 위에 생명을 얹다 —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신중덕, 추상, 생명》
DJRC   2025-08-07 10:01:48   49

추상의 숨결 위에 생명을 얹다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신중덕, 추상, 생명

 


도시재생 서포터즈 대전도시남자들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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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틈새에서 우리는 때로 예상치 못한 예술을 만난다. 대전 서구 만년동, 한밭수목원 옆에 자리한 이응노미술관은 언제나 그러한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공간이다. 그리고 2025년 여름, 이 미술관은 다시 한번 예술의 물결을 일으켰다. 바로 기획전 신중덕, 추상, 생명을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현대 한국 추상미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작가 신중덕의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작가가 40여 년간 쌓아온 조형 언어는 단순한 선과 면의 조합을 넘어선다. 그것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생명의 흐름을 형상화하는 움직임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에너지와 추상의 진동을 캔버스 위에 담아내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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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덕 작가는 생명을 추상의 언어로 해석해 왔다. 흔히 추상이라고 하면 차가운 형식성과 해석 불가능한 기호의 나열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그와는 결이 다르다. 생명을 그리는 것도, 생명을 닮아가는 것도 아닌, 생명 자체가 되는 회화. 이는 신중덕의 예술이 단지 시각적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적이며 철학적인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기획전의 전시는 크게 세 개의 키워드로 나뉘어 구성된다: ‘형태로의 생명’, ‘운동으로의 변환’, 그리고 존재의 흔적’. 초기작에서는 기하학적 형상과 중첩된 붓질을 통해 조형의 질서를 탐구하는 동시에 생명의 형태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후의 작업에서는 선들이 마치 자연의 흐름처럼 유기적으로 엮이며, 추상과 생명이라는 두 개념 사이의 간극을 무너뜨린다. 회화가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다가오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 안으로 스며들게 만든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생명은 멈추지 않는 흐름이다. 이 말은 이번 전시의 감상 키워드이기도 하다. 작품 하나하나가 완성된 이미지로 고정된이 아니라, ‘움직이는 중이라는 느낌을 준다. 물감의 결, 붓질의 방향, 중첩된 색의 뉘앙스들 속에는 정지보다 변화, 완성보다 생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는 현대 도시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회귀와 순환, 지속 가능성과 같은 키워드들이 예술과 도시 양쪽에서 서로를 비추고 있는 셈이다.

도시재생 서포터즈로서 이 전시를 접하며 느낀 바는 명확했다. 도시재생이란 결국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버려진 공간에 새 기능을 부여하고, 단절된 골목에 다시 사람의 발길을 잇는 일. 이는 추상의 언어로 생명을 표현해 온 신중덕 작가의 작업과 어쩌면 매우 닮았다. 무언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의미와 감정을 부여하는 힘. 추상과 재생, 예술과 도시의 연결고리가 미묘하게 감각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응노미술관의 전시 연출 역시 인상 깊었다. 건축학과 학생의 눈으로 볼 때, 전시 공간은 작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광과 인공조명이 절묘하게 섞이는 전시실 안에서, 관람객은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작품들 사이를 오간다. 무심한 듯 배치된 작품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공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전시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전시는 단순한 감상의 기회를 넘어서, 우리가 예술과 도시, 그리고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다시금 묻는다. 추상이라는 언어는 결코 어렵거나 불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자유로움 속에서 우리는 더 넓은 감각을 깨운다. 신중덕의 작품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감상자 스스로가 내면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게 한다.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신중덕, 추상, 생명>은 2025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예술적 사건이다. 도시를 걷다 멈추게 되는 순간, 나무 사이로 불쑥 얼굴을 내미는 미술관에서 이 전시를 마주한다면, 그것은 단지 작가의 회화를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이 될 것이다. 그것은 곧, 도시 속에서 '생명의 추상'을 마주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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